개요
피아니스트는 감독 미카엘 하네케의 작품입니다. 200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1983년 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를 원작으로 하였습니다. 프랑스의 유명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주인공 에리카 코우트 역으로 출연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칸 영화제 그랑프리,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3관왕을 받아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여파로 칸 영화제는 이듬해부터 한 영화가 두 개 이상의 상을 수상하는 것을 금지하게 되었습니다.
줄거리
오스트리아 빈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에리카 코후트는 40대의 나이임에도 여전히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에리카의 어머니는 에리카의 하루 스케줄을 꿰고 있으며, 에리카가 자기 맘대로 옷을 사는 것까지 방해하며, 한 침대를 쓸 정도로 에리카에게 집착하는 인물입니다. 에리카는 그런 어머니가 밉지만 연민의 감정을 동시에 느껴 어머니를 끊어내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을 기이한 방식으로 표출하게 됩니다. 피아노 레슨 때 보이는 엄격하고 냉정한 모습과 달리 그녀는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거나 자동차 극장이나 성인 비디오 샵에서 다른 사람들을 관음하는 형태의 이중생활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에리카는 어머니와 함께 음악 살롱에 초대되게 되고 그곳에서 젊고 잘생긴 공대생 발터 클레머(브누와 마지멜)를 만나게 됩니다. 에리카와 클레머는 대화를 나누고 발터는 에리카에게 호감을 느끼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공대생임에도 피아노를 잘 치는 클레머에게 에리카도 남몰래 호감을 느끼게 됩니다. 클레머는 에리카와의 만남을 계기로 그녀와 가까워지고자 빈 음악원의 피아노 전공 대학원 시험을 보게 됩니다. 다른 심사위원들이 모두 합격을 주지만 에리카만은 그의 실력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대학원에 합격하여 에리카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된 클레머는 에리카에게 더욱 더 적극적으로 구애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에리카는 그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 생각을 하지 않죠. 그러던 중, 그녀에게 피아노를 배우던 한 여학생이 졸업생 축하 무대에 연주자로 서게 되고 에리카는 선생으로서 리허설 무대를 지켜보게 됩니다. 긴장한 여학생은 배가 아파서 지각하게 되고, 클레머는 여학생의 긴장을 풀어주며 그녀가 연주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 모습을 본 에리카는 여학생이 연주하는 도중 강당을 빠져나가 탈의실로 갑니다. 그리고 유리컵을 부셔서 여학생의 코트 주머니에 넣습니다. 리허설을 마치고 코트를 입으려던 여학생은 손에 상처를 입게 됩니다. 이 모습을 본 에리카는 클레머에게 여학생을 도와주라고 말하고 화장실로 숨어버립니다. 이런 에리카를 본 클레머는 화장실로 들어가 에리카를 찾아내고,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장면이 여기서 등장합니다.
이후 에리카는 클레머에게 편지를 건네주겠다고 말하고, 클레머는 그녀의 집으로 가서 에리카가 쓴 편지를 읽게 됩니다. 그 편지에는 에리카의 마조히스트적인 욕망이 가득 적혀 있었고, 클레머는 고상한 대학 교수 에리카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그녀와 거리를 두기 시작합니다. 이제부터는 둘 사이의 상황이 역전되어, 에리카는 그를 따라다니며 그에게 사랑을 구걸합니다. 로버트 링어의 소년 소녀 이론을 떠올리게 합니다. '소년은 소녀를 원한다. 하지만 소녀는 관심이 없다. 소년이 관심을 거두자마자 소녀는 소년을 원한다.'
클레머는 에리카와 사랑을 나누는 걸 실패한 뒤, 에리카의 집에 처들어와 에리카의 어머니를 방에 가두고 에리카를 성폭행합니다. 다음 날, 에리카는 품속에 날카로운 칼을 숨기고 자신이 다치게 한 소녀 대신 연주하기로 한 졸업생 연주회에 갑니다. 연주회장에서 어머니와 함께 선 에리카는 클레머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클레머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에리카의 연주가 기대된다며 연주장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에리카는 황망하게 서 있다가, 홀로 남았을 때 자신의 쇄골 아래를 칼로 찌릅니다. 그리고 연주장을 빠져나옵니다.
감상 포인트 및 후기
에리카의 복잡한 심리를 추적해나가며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였습니다.
1) 에리카는 왜 어머니를 떠나지 못하는가?
2) 에리카는 왜 클레머를 밀어내는가?
3) 에리카는 왜 클레머에게 자신의 욕망이 적힌 편지를 주었는가?
4)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의 손을 망가뜨린 이유가 무엇일까?
저는 위와 같은 질문들을 던지게 되었는데, 원작 소설에는 에리카의 심리가 직접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반면 영화는 생략되어 있어서 상상력을 자극하였습니다. 책에서 나오지 않은 '4)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의 손을 망가뜨린 이유'에 대해서만 언급을 하자면, 에리카는 표면적으로
발터가 다른 여학생과 어울리는 모습에 질투를 느껴서 그런 짓을 한 것으로 그려져 있지만, 동시에 모범적인 여학생에 자신의 어린 시절을 투영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학생의 어머니가 '안나를 위해 희생했다'고 말하자, 에리카가 어머니가 희생한 게 아니고 그애가 희생한 거라고 정정해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에리카가 어머니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희생했던 소녀시절을 떠올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겉모습은 어른이지만 아직 어머니에게 메여 사는 소녀라는 에리카 코후트를 잘 극화한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원작 책에서 크게 두 가지 부분을 수정하였는데 책에서는 손을 다치는 여학생이 플루트를 부는 여학생이지만 영화에서는 에리카의 제자로 바뀌었습니다. 영화는 설정을 수정하여 에리카가 자신의 제자의 손을 망가뜨린 이유에 대해 좀더 포커스를 맞추었고, 에리카가 소녀 대신 연주를 맡게 되면서 둘 사이의 연관성을 부각시켰습니다.
책과 영화의 결말 차이
책에서는 에리카가 클레머가 다른 친구들과 행복하게 웃는 것을 지켜보다가 결국 자신을 찌르고 집으로 향합니다. 한편 영화에서는 연주회장에서 클레머를 찌르지 못한 에리카가 스스로를 찌르고 나서 연주회장을 빠져나가는 것으로 비슷하지만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책에서는 에리카가 다시 자신의 집으로 향하면서 에리카가 결국 집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영화에서는 에리카가 어디로 가는지는 보여주지 않고 대신 그녀가 나온 연주회장의 아름다운 모습이 담깁니다. 미카엘 하네케는 결말에 음악원의 모습을 담으려고 했다고 밝혔는데, 이로써 신동들이 소비되는 클래식이라는 예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에리카가 벗어나는 장소에 초점을 맞추게 되어 더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