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혼돈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이 세상은 온통 혼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을 뿐더러, 잠시 후의 내가 방금 전의 나와 동일 인물이라고조차 말할 수가 없죠. 또한 우리는 뉴스를 통해 기상천외한 사건들, 자연재해 소식들을 매일 접합니다. 이 책의 저자인 룰루 밀러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인생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가 인생의 의미는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됩니다. 저자의 아버지는 삶이 혼돈으로 가득 차 있으며, 혼돈만이 우리 삶의 지배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나 개미나 중요성에 있어서는 별 다를 바 없다고도 말합니다. 저자는 이 말에 삶에서의 나침반을 잃어버린 것 같은 심정이 됩니다. 이후, 룰루 밀러는 대학에 가게 되고 한 곱슬머리 남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룰루 밀러는 충동적으로 한 여자와 키스를 하게 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남자친구가 그녀의 곁을 떠납니다. 그러자 룰루 밀러는 마치 망망대해 위의 돛단배에 올라탄 것처럼 혼란스러운 심정에 빠지게 됩니다. 이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룰루 밀러가 혼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분류학자에 대해 조사하면서 동시에 기존에 자신이 지니던 세계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녀 인생의 우상이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알아가면서 그녀는 충격적인 진실에 접근하게 됩니다.
분류학이란?
분류학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물의 계통과 종속을 특정 기준에 따라 나누어 정리하는 생물학의 한 분야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어류 전문이었다고 합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원래 별을 좋아하던 소년이었습니다. 따라서 중간 네임인 스타도 그가 개명한 이름입니다. 별자리를 마스터한 소년은 나중에 어류에 관심을 갖고 물고기들을 수집하여 분류하는 과학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는 처음에는 그저 열성적인 분류학자였지만 루이 아가시라는 박물학자를 만나고 그의 가르침을 사상적 기초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분류학에 신학적 사명을 부여하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그가 루이 아가시로부터 받아들인 사상적 토대는 생명체는 창조주의 생각이며 분류학은 "창조주의 생각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이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박살 사건'을 겪게 됩니다. 바로 1906년 4월 18일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었습니다. 지진으로 인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30년동안 모아놓은 물고기 셀렉션이 파괴되었습니다. 또한 그의 스승인 아가시의 동상도 땅에 거꾸로 처박히게 됩니다. 이 사건은 혼돈에 맞서 싸우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자연의 일각에 패배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포기를 했을 지도 모르지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바늘로 남아있는 물고기들에 이름표를 꿰매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어떻게 절망에서 일어날 수 있었는지 그가 남긴 저서들을 살펴보게 됩니다. 거기에 자신이 찾고 있는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러다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운명을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라고 한 말을 보게 됩니다. 물론 이는 어느정도 맞을 수 있는 말이긴 하지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자신이 겪은 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속인 것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긍정적 자기기만이었습니다. 그는 자연이 더 격하게 자신의 일에 맞서는 것처럼 보일 때면 강박적으로 물고기 수집에 몰두하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무력감을 느낄 때 강박적인 수집이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있었는데, 데이비드 스타 조던도 더욱더 물고기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일에 매진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신학적 사명을 가진 분류학에 대한 맹목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인간을 부적합자와 적합자로 분류하는 데까지 미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미국에는 우생학이라는 단어가 널리 보급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분기학자들은 기존 분류 체계에 메스를 가져다대어 해제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어류라는 분류기준은 사라졌습니다. 그것은 비늘로 덮인 외피를 가졌다는 이유로 어류로 분류된 수많은 생명체들이 지닌 미묘한 차이들이 가려졌기 때문입니다. 즉, 생물의 내부 장기를 보면 어류로 분류된 수많은 생물체들이 실상은 다른 생물체들과 더 유사한 지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직관에 어긋나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현재 학자들 사이에서는 인정되는 사실이라고 합니다.
후기
저자가 혼돈에 맞서기 위해 선택한 인물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사실은 우생학이라는 단어를 미국에 보급해 많은 사람들을 고통받게 한 인물이라는, 나름의 반전이 있었던 책입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어류라는 분류 기준은 존재하지 않으며 어류의 골격이 인간과 유사한(척추골, 갈비뼈를 닮은 돌가시, 작은 머리) 점을 갖고 있다는 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이제 수족관 속에 있는 물고기를 보면 전과는 다른 기분이 들 것 같습니다. 물고기들을 어류로 묶어서 부르는 것은 물고기들에 대해 경멸적인 어조를 내포하는데, 물고기가 인간의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 생물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전처럼 생선을 소비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한편 저자는 결국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지 못했습니다. 물고기라는 분류 기준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혼돈에 대해 패배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물고기를 놓아버림으로써 오히려 자신이 그동안 알지 못했던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짝이라는 기준에 맞지 않는 연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동안 단순한 생명체로만 바라보았던 물고기들에 둘러싸이고, 물고기들과 소통하면서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인간은 진화상 어떤 대상을 분류하고 선입견을 가짐으로써 위험에 대처하면서 진화 사다리의 꼭대기에 오르게 되었지만, 그럼으로써 놓치는 행복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세상과 나 자신에 대한 잣대를 내려놓음으로써 더 성장하고 행복을 느끼게 된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