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82세가 된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고 왔습니다. 한국 개봉일은 10월 25일이었습니다. 극장에 들어서니 자리가 거의 빈 틈 없이 차 있는 것을 보고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 82세가 된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동안 은퇴를 번복해 왔지만 이번 작품이야 말로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거라고 여겨지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운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례적으로 영화 포스터를 제외한 어떤 마케팅도 진행하지 않아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증을 더 자아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지브리 영화 중 최대의 제작비가 들어갔다고 합니다. 제작 기간도 7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었고, 작화 매수도 기존 지브리 애니보다 높다고 합니다.
개요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동명의 원작 소설을 모티프로 삼았습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원작 소설에서 모티프를 따왔을 뿐 내용은 원작과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간단하게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의 원작 소설에 대해 살펴보자면, 1937년에 발표된 요시노 겐자부로라는 작가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은 청소년 주인공이 여러 가지 일을 겪고 삼촌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는 형식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손주들을 염두에 두고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제작하였다고 하는데 소설 속 삼촌처럼 손주에게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관객 반응
먼저 개봉한 일본에서의 반응은 호불호가 확실히 갈렸습니다. 일본 최대 영화 평가 사이트인 필마크스 등에서는 만점인 5점과 1점으로 점수가 나뉘면서 평균 평점이 3점대에 수렴하고 있다고 합니다. 불호 쪽에서는 "난해하다" "이해하기 어렵다" "과거 지브리의 복제판"이라는 의견이 나타났고, 호평 쪽은 "감동적이다" 라는 반응이 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의 네이버 영화 평점도 6점대로 지브리 전작과 비교하면 그리 높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
줄거리
주인공 마키 마히토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화재로 인해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함께 도쿄에서 어머니가 살았던 저택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똑 닮은 어머니의 여동생과 재혼을 한 상태였습니다. 오래된 저택에는 7명의 노파가 일을 거들어주고 있었고, 마히토는 거기서 인간의 말을 하는 왜가리를 보게 됩니다. 저택에는 신비한 탑이 있었는데, 한 노파가 예전에 책을 좋아하고 똑똑했다던 큰할아버지가 지었다는 얘기를 합니다. 어느날 임신을 한 새엄마는 홀연히 모습을 감추고, 마히토는 왜가리의 목소리에 이끌려 신비한 탑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리뷰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전적 스토리
예전 지브리 영화가 대중들을 의식해서 만들었다면 이번 영화는 감독님이 자신을 위해서 만든 느낌이 꽤 많이 들었습니다. 1941년 도쿄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한창일 때 태어난 감독의 자전적 삶이 이야기 설정에 투영되어 있습니다. 은퇴 선언을 번복하면서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것은 가슴 속 풀리지 않은 응어리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관객들이 보기에 난해한 성격을 띄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감독이 소년 시절에 겪었던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하기 위한 과정으로 이 영화를 제작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왜가리가 안내하는 신비한 탑은 마치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시공간을 통과하는 장소 같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무의식과 현재 의식을 오가는 공간입니다. 마히토는 죽은 엄마가 있다는 소리에 이끌려 탑 안으로 들어가지만 다시 한 번 엄마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새엄마를 찾는 것으로 목표를 변경하지만, 실은 자신이 새엄마를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마주하게 되죠.
이 당시 일본에 형사취수제 같은 풍습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아이의 입장에서 엄마의 여동생과 아버지가 재혼을 한다면 엄청난 충격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히토는 어린애답지 않게 시종일관 의젓하게 굴고 자신의 속마음에 대해 한 번도 털어놓지 않습니다. 엄마의 죽음과 전쟁으로 인해 너무 빨리 자라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서 안타까웠습니다.
영화의 초중반까지는 느슨한 전개와 연출적으로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고, 난해한 이야기로 왜 이 영화가 호불호가 갈리는지 확실히 알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마히토가 이세계에서 펠리컨, 앵무새들과 부딪히면서 새엄마를 찾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습니다. 현실에서는 작고 귀여운 새들이 이세계에서는 빌런으로 등장하는 게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앵무새는 후각이 발달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귀여우면서도 무섭고 재밌는 캐릭터였습니다.
영화의 후반부로 가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하고 싶은 메시지가 좀더 직접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탑의 주인인 큰할아버지는 이세계에서 블록을 쌓아 올리면서 세계를 유지시키는 인물입니다. 큰할아버지는 마히토에게 악의가 물들지 않은 돌을 건네며, "너 자신의 왕국을 만들어라"라는 말을 합니다.
현실로 돌아온 마히토의 주머니에는 할아버지가 건넨 그 돌이 들어 있었습니다. 비록 소년에서 어른이 되어가면서 그 기억은 희미하게 사라져 버릴 것이지만, 돌이 가진 힘으로 마히토는 그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하게 될 거라고 왜가리는 말합니다. 그리고 마히토는 이전의 세계로 되돌아갑니다.
자신의 왕국 만들기
마히토는 학교 친구와 싸운 뒤 스스로 돌로 머리를 쳐 자해를 합니다. 그리고 큰할아버지에게 이 상처가 자신이 '악의'라고 말합니다. 마히토가 말하는 '악의'는 차마 상대를 해칠 수 없어 대신 자신을 해치는 악의일 것입니다. 엄마를 여의고 이모를 새엄마를 받아들여야 하는 소년의 마음은 그렇게 무너진 상태였을 것입니다. 이 영화는 전쟁이라는 어른들의 악의가 한 어린 소년 안에 스며들어 어떻게 마음을 무너뜨렸는지, 그리고 그 소년이 무너진 마음을 어떻게 다시 재건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소년은 무너진 탑 속에서 악의에 물들지 않은 마음, 이모를 엄마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조각을 가져왔습니다. 감독은 무너진 세계 위에서도 순수하고 깨끗한 자신의 왕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쿠키
쿠키 영상은 없다고 합니다.